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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화원(珠花園). 조선 내의 유명한 기생집의 이름이었다. 보석 꽃이 있는 동산 이라는 이름 답게 아름답기로 소문난 기생들이 많은 곳. 그 곳은 그런 곳이었다. 외모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가야금이면 가야금, 춤이면 춤, 뭐든 빠지지 않는 기녀들만 존재하는 곳. 그들이 파는 것은 웃음이 아니었다. 그들이 파는 것은 기예(技藝)였을 뿐. 그리고 주화원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는 이름 하나. 화영(華榮)

 그녀의 원래 이름은 장화영(張花榮). 꽃 같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은 집안이 몰락하고 나서 화영(華英)-아직 피지 못한 꽃 봉우리-이라는 기명(妓名)으로 변모하여 그녀의 곁에 남아 그녀를 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화영, 그녀는 남들보다 밝은 머리색을 가지고 있었고, 남들보다 밝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모는 그 누구보다 뛰어났고, 그녀의 기예도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몰락한 양반가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양반가의 여식. 그녀는 똑똑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그녀가 어릴 적 배운 모든 것들을 써먹을 수 있었다. 그녀는 주화원의 명기(名妓)였다.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고, 주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단 한 번도 웃음을 팔지 않았고, 몸을, 그리고 마음을 내주지 않았다. 머리를 올리지 않은 기녀. 그 이가 바로 화영, 그녀였다.

 

 하지만, 운명의 실타래는 언제나처럼 굴러갔다. 그녀의 손가락 끝, 보이지 않은 붉은 실이, 이미 그녀의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紅連

W. Liell

 

 

 

 

 

 

 화영(華榮), 그녀가 가장 잘 하는 것은 가야금을 타는 것. 음률(音律)에 유독 뛰어난 그녀의 특기이자 장기였다. 몸을 팔지 않고 기예를 파는 주화원의 이름에 가장 알맞은 그녀의 재능은 매일 밤, 사람들을 주화원으로 부르는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나 화영의 가야금이었다. 매일 연주하지는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연주한다 소문이 난 날이 될 때마다 주화원의 방은 사람들로 가득차고는 했다. 주화원 안에 있는 방이 아닌, 주화원 내부에 있는 월화루(月花樓), 그 위에 한 떨기 꽃처럼 그렇게 그녀는 혼자서 색색의 노래를 수놓는 일을 했다. 그녀의 연주를 들을 때 마다, 지체 높은 양반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거나, 어미 잃은 아이처럼 엉엉 울곤 했다.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그들이 누구와 있던지 간에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자극하는 그녀의 연주에 사람들은 감정을 그대로, 본능적으로 보이곤 했다.

 

 그리고 친우인 대훈(大勛)을 따라 간 주화원에서 운명처럼 그 노래를 들은 것은, 조선에서 소문난 좌상의 아들, 지효(支孝)였다.

 

 장난기가 많지만 친절하고, 친절하지만 냉철하고, 냉철하지만 따스한. 문관이지만 무관의 자질도 가지고 있는 남가(南家)의 둘째 아들은 조선에서 녹을 먹는 이들에게는 한 번 쯤은 들어본 이름이었다. 성균관에서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고, 무술 실력도 뛰어난 그가 제 아비를 따라 훌륭한 관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그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는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여기는 기방(妓房)이 아닌가, 내 이런 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지 않는가?”

 “평범한 기방이 아니니 친우께서 데려오신 것이 아닙니까. 오늘은 또, 저희 주화원(珠花園)의 꽃이 노래를 수놓는 날인데, 선비께서는 좋은 벗을 두셨군요.”

 

 

 

 화려한 옷을 입고, 희게 분칠을 하고, 붉디붉은 입술을 바르고, 하지만 한 없이 아름다울 뿐, 천박하지 않은 여성이 그의 곁에 앉아 술을 건네자 한숨을 푹 내쉬는 지효의 모습을 보는 대훈이었다. 제 친우가 이런 곳을 그리 즐기지 않는다는 걸 수 없이 많이 본 그로선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 화영(華榮)이 노래를 하는 날이라 했다. 이런 기방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부친조차도 그 화영의 노래를 듣기 위해 가끔씩 이곳을 찾는다 했으니, 한 번쯤은 나쁘지 않다. 라는 생각으로 지효를 끌고 온 대훈이었던 것이었다. 음률(音律)을 즐기는 지효였으니 더더욱.

 

 

 “그래서 언제 이 주화원의 못다 핀 꽃 한 송이가 노래를 수놓는 건가?”

 “지금은 유시(酉時)의 끝이고, 화영, 그 아이가 노래를 시작하는 시간은 술시(戌時)이니 곧 아이가 누각 위로 오를 것입니다. 그러니 선비님들은 조금 더 풍류에 취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풍류는 그 꽃이 살려줄 것이고, 술이나 더 따라주게. 저 친구에게도 더 따라주고.”

 

 

 유난히 기분이 좋아 보이는 대훈의 행동에 지효는 한숨을 푹 쉬고선 제 앞에 있는 술잔만 들고 마실 뿐이었다. 봄 향기 가득한 술 맛을 찬찬히 음미하던 그의 곁으로 다가온 기녀 하나가 그의 옆에 있던 창을 열자 남색으로 바뀐 하늘 위를 살랑거리며 수놓는 벚꽃 잎이 만개하고, 그리고 그의 눈에 믿을 수 없는 인형(人形)이 보였다.

 

 갈색? 아니, 저건 틀림없이 금()의 색을 띄고 있었다. 머리를 수놓는 아름다운 금사(金絲)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그의 눈에 비춘 것은 틀림없는 금색의 머리카락이었다. 색색의 보석으로 장식한 머리를 틀어 올리고, 벚꽃(櫻花)의 꽃잎을 닮은 저고리를 그리고 치마를 입은 한 소녀? 여인?

 

 

 “벌써, 술시(戌時)가 다 되었나 보군요. 저희 주화원의 꽃인 화영이라는 아이랍니다. 선비님께서는 벌써 그 아이의 미모에 현혹 되신 것 같아 보이는군요.”

 “.......?”

 

 

 멀리서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달빛이 차오르는 그 모습에, 그리고 처음으로 튕기는 가야금의 맑은 소리에, 한 없이 아름다운 자태가, 그녀의 모든 모습이 지효, 그의 모든 시선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공기를 타고 흐르는 아련한 떨림. 금방이라도 파드득 떨어질 것만 같은 눈물 섞인 음률. 서서히 젖어드는 공기와 아득히 멀어지는 것 같은 감각. 심장 한 켠, 아려오는 느낌. 점점 들려오는 음률에 금방이라도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으면서도, 지효의 시선은 그저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벚꽃을 닮은 그 소녀.

 

 그리고 서서히 잦아드는 노랫소리와, 차분히 잦아드는 감정의 휘몰아침, 그리고 그 때서야 마주한, 호수, 그러니까 월화루(月花樓) 아래 있는 월호(月湖)에 비추어 더더욱 아름다운 자태는 그의 시선을 잡아둘 수밖에 없는 천상(天上)의 미() 였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은 아련함을 담은 짙은 녹색의 눈동자가, 지효의 갈색 눈동자와 마주했을 때, 그래 그들은 운명적으로 그들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들은 전생의 연이 닿아, 월하(月下)노인이 이어준 붉은 실을, 그들의 손가락 끝에 매달고서 그들을 찾아 헤매어 이제야 마주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인연이, 그 붉은 실이 준 홍연(紅聯)의 끝이 그리,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는 것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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