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 스텔리어가 스가와라 코우시를 처음 만난 날은 그녀의 사촌 오빠인 세미 에이타와 그녀가 다니는 시라토리자와 학원이 전국에 진출한 날이었다. 경기장 외부에서 길을 잃은 그녀를 발견하고 그가 길을 알려준 날운명처럼 리아 스텔리어는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반해버렸다. 우연이 필연이 되었고 필연이 운명이 되는 사랑을 리아 스텔리어는 두렵지 만 혼자서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그의 고백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빗방울 전주곡

W. Liell

 

 

 

 

 "좋아해요."

 

 

 

 어색한 존댓말과 어색한 웃음. 이 상황이 어색한 것인지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하얗고 예쁘게 곧게 뻗은 손가락. 하지만 그녀가 항상 예쁘다고 생각했던 고동색 눈동자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그의 곧은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맑고 투명한 목소리로 무섭도록 아름다운 유혹을.  그의 그런 모습에 리아, 그녀의 짙은 에메랄드를 박아 넣은 것만 같은 녹음(綠陰)을 담은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아얼마나 바래왔던 목소이었는가.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달콤한 목소리로 아주 사랑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며 설레는 표정을 짓고. 하지만 리아 스텔리어는 두려웠다. 몸이 덜덜 떨려왔다. 상냥하게 불어오는 초여름의 바람은 오랜만에 찾아온 열기를 날려버리는데도 상쾌하다는 느낌 보다는 찬물을 뒤집어 쓴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오싹함

 

 

 "리아양?"

 

 

 어색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점점 그녀의 두 눈에 박혀있는 보석에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덜덜 떨려오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조금은 당황한 듯 웃으며 그녀의 눈가로 손을 가져다대는 스가와라의 손길을 피한 건 그 때 였다.

 

 

 "죄송합니다. 못 들은 걸로 할게요."

 

 

 무언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몸을 돌려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모습에 당황해 쫓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스가와라는 멍하니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 토옥

 

 

 멍하니 굳어버린 그의 얼굴에 차갑게 떨어지는 무언가에 정신을 차린 스가와라가 멍하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비가 오네."

 

 

 

 

 

*

 

 

 

 

 

 "리아요? 리아 아파서 안 나왔는데요."

 

 

 그녀가 결석한지도 벌써 3일째였다. 감기라고 했다. 그렇게 뛰어가는 그녀를 잡지 못한 스가와라가 결국 찾아온 곳은 그녀가 다니고 있는 시라토리자와 학원. 무리를 해서 연습을 빠지고서 그가 향한 곳은 이 시라토리자와 학원이었다. 교문 밖으로 나오는 학생들을 잡아서 눈으로 그녀를 찾다 익숙한 얼굴의 한 소년을 발견하고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카와니시 타이치. 시라토리자와의 미들 블로커이자 리아, 그녀와 같은 반 학생이라고 들었던 소년그와 마주하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은 아프다, 였다.  익숙하게 리아라고 말하는 그 소년의 모습에 불쾌함 보다는 부러움이 더 먼저 드는 것도 찰나. 아프다는 말에 사색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날의 고백이 그녀를 아프게 한 것일까.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음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생각을 끊은 것은 카와니시였다.

 

 

 "리아 문병 가시려고요집 주소 알려드릴게요."

 

 

 같이 건네 오는 쪽지에는 그녀의 집 주소가 적혀 있었고 그런 그의 쪽지를 받아들고 스가와라 코우시는 뛸 수밖에 없었다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고 달려가는 스가와라의 모습에 카와니시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

 

 

 

 

 

 문을 두드릴까, 아니면 전화를 할까. 뛰어가면서 한참을 한 고민삼일 전 부터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어제 아침 기상예보에서 말하던 장마의 시작이었던 것인지 살짝 달아오른 대기를 빗방울이 차게 식히고 있었다. 스가와라의 은회색 머리카락 위에도 쏟아져 내리는 물방울은 상관도 없이 뛰어간 쪽지에 쓰인 주소.

 

 그가 마주한 집 앞은 평범한 집은 아니었다. 흰 철제 대문과 장미 넝쿨로 둘러싸인 담장. 대문 너머 보이는 흰색의 건물순간적으로 흠칫할 수밖에 없는 소리가 들려오는 건 그 때였다

 

 

 쇼팽의 피아노 전주곡 제 15번 빗방울 전주곡. 음악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그가 이 노래를 아는 이유는 리아, 그녀 때문이었다빗소리와 함께 그의 귀를 자극하는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스가와라는 가만히 대문 앞에 서서 그 노래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톡, 톡 떨어질 때 마다 점점 강약을 조절하며 커지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푹 내쉬는 그였다. 가만히, 아주 가만히 듣던 중에 감정이 극대화되어 크게 내리치는 부분이 그의 귀에 들려오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게 스가와라 코우시는 핸드폰을 들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고백 이후 처음으로 거는 연락이었다.

 

 뚜르르-

 

 초조한 마음으로 대답이 들려오기를 바라는 순간 그의 귀에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가 멈추고선 작은, 아주 작은 목소리가 그의 귀에 들려왔다. 아주 작아서 그 누군가 들어도 그저 지나가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할 만한 그런 목소리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리아였기 때문에 스가와라 코우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간절했다. 부디 제발 받아주기를

 

 

 

 

 

*

 

 

 

 

 

 "아가씨 밖에 누가 있는데요."

 "? 누구요?"

 "누군지는 잘 모르겠어요... 은회색머리색의 남자분이시던데 검정색 교복을 입고 있으셔서 혹시 아가씨 친구 분이신가 해서요."

 

 

 직감적으로 그라는 걸 알았다. 검정 교복에 은회색머리. 근데 그가 여길 어떻게. 의문이 의문을 타고 흘러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의아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는 고용인에게 아니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 울리는 핸드폰과 그 핸드폰에 뜨는 '스가와라 코우시' 라는 이름.  몸을 일으켜 열려있는 연습실 창문으로 뛰쳐나갔다. 발끝에 닫는 잔디의 축축함도 인지하지 못하고선 대문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는 그녀였다.

 

대문 앞, 기대어 서 있는 그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무 말 없이 대문에 기대어 섰다. 등 뒤로 느껴지는 철제 대문의 찬 기운이 그녀의 몸을 타고 으슬으슬하게 올라왔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기대어 서 그가 알아채기를, 하지만 알아채지 않기를 바라며 그렇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바람을 안 것인지, 아니면 알지 못한 것인지 그, 그러니까 스가와라 코우시는 그녀의 인기척을 빠르게 알아챘다.

 

몸은 좀, 괜찮아요?”

 

울컥. 다정한 목소리에 눈물이 차올랐다. 쏟아지는 빗물을 맞으면서 리아가 아무 말도 없자 가볍게, 하지만 깊게 웃으며 계속에서 다정한 목소리를 쏟아내는 스가와라의 목소리는 리아, 그녀의 눈물을 쏟아내게 할 정도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덜덜 떨려오는 몸은 너무나 추워서인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감정을 그녀가 제어하지 못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울고 있는 걸 들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아프다고, 아니 학교에 찾아갔는데 아프다고 들어서 실례인건 알지만 이렇게 찾아와버렸어요.”

 

다정한 사람. 그녀가 사랑하는 저 남자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다정하고, 상냥한 사람. 그 상냥함은 리아, 그녀에게는 독과 마찬가지인 존재였다. 모두에게 상냥하고, 다정한 그 모습은 그녀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었고, 그래서 더 무서웠다. 그저, 그가 느끼는 좋아한다는 감정은 그녀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고, 관계의 깨어짐이 두려웠다. 그저 지금까지 그와 있었던 관계. 친한 오빠, 동생. 조금은 어색한 사이지만 그래도 매일 연락을 하고 지내는 두 사람의 사이가 발전한다고 하면 그 끝을 먼저 생각하고 있는 본인의 모습. 모든 것이 두려웠다. 겁이 많은 그녀였다. 좋아한다고 생각한 사람과의 끝을 생각하고 있는 그녀 스스로의 몸이 떨려오자 결국 주저앉아버리는 그녀였다.

 

아픈 건 좀 괜찮아요? 얼굴 보고 싶은데, 안 보여줄 거 같아서.”

눈물이 밀려왔다. 눈가에 흐르고 있는 것이, 얼굴에 흐르고 있는 것이 눈물인지 빗물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 이었다. 눈물이 흐르고 빗물이 흐르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그녀도 마찬가지라고. 그녀도 그를 좋아하고 있다고.

 

괜찮았으면 좋겠어요. 가 볼게요. 다음에는 얼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대고 서 있었던 탓에 끼익, 하는 소리가 들리고선 발걸음이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 뛰어가서 잡을 수 없어, 그렇게 리아 스텔리어는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다.

 

 

 

 

 

*

 

 

 

 

등 뒤로 느껴지는 인기척에 머리를 한 번 털었다. 축 젖은 머리카락이 그의 고동색 눈동자를 가렸다. 입술을 열고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몸을 일으켜 그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무슨 연유로 자신의 고백을 거절한 것인지, 그를 피하는 것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스가와라 코우시는 욕심이 났다. 욕심. 리아 스텔리어를 향한 욕심. 절대 포기하지 않으리,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초여름의 비는 그의 그런 다짐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장마의 시작이었고, 감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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