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달 월간 드림 참여작 입니다.

* 스가리아

* 염장질이 매우 심합니다...

* 탈 주제 한 기분...(._.









 

우리가 사귀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 봄 소풍에서 나는 나도 모르게, 정말로 순간적으로 벚나무 아래에서 네 입술에 입을 맞췄고, 더운 여름날, 네 처음이었던 나츠 마츠리에서, 너는 언제나처럼 그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었으며 그 미소 후에 잔뜩 부끄러워져 입술을 맞추던 너의 모습이, 그 모든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여 모든 추억 속에 담기고 있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너를 만나고 난 그 다음부터 네가 없는 내 과거는 없었다. 내 전부가 너였고, 다가올 모든 계절이, 미래가, 바로 너였다.

 

 

 

 


사계절이 전부 너였다.

W.Liell 

 

 

 

 

시라토리자와 학원. 미야기 내 있는 사립 고교로 현 내 최고라고 불리는 왕자(王子) 우시지마 와카토시를 주축으로 이뤄진 배구부로 유명한 학교였다. 물론 스가와라 코우시에게는 이미 그 의미는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말이다.

 

어찌 되었던 간에 카라스노 교복을 입고 그 앞에 서 있는 스가와라 코우시에게 유난히 학생들은 오늘따라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학생들도 있었고, 누구를 기다리냐며, 할 일이 없으면 자신과 가자며 말을 건네는 여학생까지. , 두 번 온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많은 이들이 붙자 결국은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려던 그의 손을 멈추게 하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너가 왜 여기 있냐?”

리아랑 데이트하기로 했거든.”

.”

 

 

크림의 끝에 초콜릿이 묻은 것만 같은 머리카락. 날카로운 말투로 그에게 말을 건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세미 에이타, 시라토리자와의 세터였다. 착한 오빠에요. 라고 말하는 리아의 말과는 달리 유독 스가와라, 그에게 날카롭게 구는 세미 에이타의 모습에도 그저 스가와라는 웃으며 그의 목적을 순순히 알려주었다. 그가 왜 그렇게 날카롭게 구는지 이미 리아를 통해 들었으니까.

 

 

오빠?”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제 사랑하는 연인의 목소리에도 자동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단정하게 입은 교복 위로 흩어져 내리는 금발의 그 머리카락은 이 가을의 햇빛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것을 잊은 것인지 평소답지 않게 빠르게 뛰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품에 안아오는 스가와라였다. 물론 그들의 그 모습에 좋지 않은,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질투 섞인 시선을 보내오는 세미였지만, 그런 그의 시선이 하루 이틀인가, 라는 생각으로 품에 안겨 배시시 웃어 보이는 리아였다.

 

 

오늘 연습은요?”

오늘은 없어, 데이트 하려고 데리러 왔어 리아야.”

 

 

달큰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 순간 확, 달아오른 얼굴에 그의 품에 부비적거리다가 고개를 드는 리아의 모습을 보며 예쁘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품 안의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으니까.

 

하루하나.”

 

한참을 껴안고 잔뜩 염장을 지르고 있던 두 사람의 귀로 세미의 목소리가 찾아든 건 그 때였다. 그가 말한 하루하나에 반응한 건, 리아였다. 순간 움찔 하고선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건 세미 에이타의 장난스러운 웃음이 걸린 얼굴이었다.

 

세미 하루하나, 일찍 안 들어오면 이모한테 다 말 할 거니까,”

오빠!”

그러면 데이트 잘하고, 제 시간에 잘 데려다 줘라.”

 

 

경고성이 살짝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움찔하는 리아를 느끼고선 품에 안고 다독여 주는 스가와라였다. 왜 저러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우선은 자리를 옮기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한 스가와라가 품에서 리아를 빼내,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아 손깍지를 끼웠다.

 

 

갈까?”

..!”

 

 

 

 

 

*

 

 

 

 

 

서로의 손을 잡고 발걸음을 옮겨 그들이 향한 곳은 영화관이었다. 보고 싶은 영화가 최근에 개봉했다던 그녀의 말을 기억 하고 있었던 그였다. 예의 그 아름다운 보석을 박아 넣은 것 같은 녹안을 반짝이며 그에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큰 콜라와 팝콘을 하나씩 사서, 들어간 극장 안은 아직 시작 되지 않은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조명이 다 꺼지지 않은 상태로 광고를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손잡이가 있나, 확인하려 손을 휘적이다가 보니 아무것도 없는 느낌에 옆을 보면 어색하게 웃으며 여기 커플석, 이라며 소근 거리는 스가와라의 모습이 리아의 눈에 비춰졌다. , 달아올라 붉어진 얼굴을 숨기려고 할 때 마침 타이밍 좋게 조명이 다 꺼져버려 다행의 의미의 한숨을 푹 내쉬는 리아였다.

 

그녀가 보고 싶어 했던 영화는Goodbye Summer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이미 다 커버려, 서로를 잊고 살 무렵, 언젠가 같이 찍었던 졸업식의 사진이 우연처럼 여자의 어깨 위로 떨어져, 그 때의 서로를 생각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시작으로 과거 학생 때의 두 사람의 모습이 스크린에 하나, 둘 펼쳐지기 시작했다.

 

교실에서 떠들다 걸려 복도에서 손을 들고 서 있었던 두 사람의 모습, 중학교 졸업식 때 울고 있는 여자 주인공을 달래주면서도 눈물을 꾹 참고 있는 남자의 모습. 같이 간 마츠리에서 불꽃놀이를 보며 예쁘게 웃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 웃는 남자의 모습. 그리고 영화의 끝으로 갈 때 쯤, 서로의 감정을 독백으로 털어놓는 두 사람의 모습까지.

 

어떻게 보면 진부한 그 영화를 보며 리아는 웃고, 울며, 영화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리아의 모습에 조금은 섭섭해지려고 하던 찰나, 마침내 만난 두 사람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나서의 키스를 나눌 때, 스크린 빛에 반사 되어 부끄럽게 웃으며 고개를 돌리는 리아의 모습이 스가와라의 눈에 들어왔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잡아, 눈을 마주하고, 파르르 속눈썹을 떨며 그 짙은 녹색의 눈을 감는 리아의 입술에 가볍게 내려앉은 스가와라의 입술, 동시에 그의 따스한 눈동자도 천천히 시야에서 사라져 내렸다.

 

 

 

 

*

 

 

 

 

재밌었어?”

, 기대했던 영화였는데 너무 재밌었어요.”

 

 

영화를 다 보고 영화관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재잘거리는 리아를 바라보고 있는 스가였다. 여간 마음에 들었던 것이 아니었던 건지 신나게 재잘거리는 리아를 보면서 웃어 보이다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걸치며 작게 속삭이는 스가의 질문에 헉, 하고 숨이 멎은 리아였다. 고개를 가까이 해 입술과 입술이 닿을 것만 같이 그녀의 얼굴로 다가가선,

 

 

키스는?”

 

 

라며 그 답지 않은 장난을 치자, -, 순간적으로 빠르게 달아오른 얼굴이 느껴지는 리아가 얼굴을 잡고선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가린 얼굴뿐만 아니라 귀 끝까지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모습에 가볍게 웃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가린 손을 부드럽게 잡아내려 그 손끝 마디마디에도 가볍게, , 촉 입을 맞추는 스가와라의 행동에 사과보다 더 붉어져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리아였다.

 

 

우리 리아 이렇게 부끄러워해서 어쩔까.”

 

 

장난스러운 말까지. 작정하고 그녀를 놀리는 그의 행동에 푹, 고개를 숙이고 웅얼거리자, 푸스스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그녀의 손을 잡은 손을 내려놓았다. 제 작은 연인이 수줍음이 많다는 것은 그 역시도 잘 알고 있었지만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놀리는 이유는, 단지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신 앞에서 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묘한 소유욕, 그가 그녀에게 느끼는 감정 중에 하나였다.

 

 

오빠아...”

 

 

말꼬리를 길게 늘여 말하는 리아의 말에 씩, 웃으며 몸을 뒤로 빼선 바르게 앉는 스가와라였다. 더 하면 울려버릴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

 

 

 

 

 

, 벌써 9시네. 슬슬 돌아갈까?”

 

학교가 끝나고 바로 영화를 보러 온 것이기도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 150분의 러닝 타임은 아무래도 무리였던 것인지, 이미 늦은 밤이 되어버린 걸 지금에서야 확인한 두 사람이었다. 딱히 뭘 챙길 필요는 없었던 두 사람이어기 때문에 가방만 챙겨 카페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이 천천히, 정류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물론 두 사람의 손은 서로의 손을 잡은 채로.

 

시내의 정류장이었기 때문일까, 꽤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내리고를 반복할 동안 두 사람의 집으로 향하는 마지막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하자 그 둘을 포함해, 대여섯 명의 사람들만이 버스에 올라탔다. 여전히 손을 맞잡은 채 맨 뒷자리에 앉아 소곤소곤, 서로의 얼굴을 보고 작게 웃으며 대화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버스 안에 몇 없는 사람들 사이에 숨겨져 그들만의 세상을 만든 것처럼.

 

한참을 그렇게 얘기했을까. 조금은 피곤했던 것인지 작게 하품을 하는 리아를 보고 웃으며 어깨에 기대라며 톡톡 치자 살포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오는 리아였다. 아무래도 키 차이가 나는 편인지라 살짝 몸을 내린 상태로 그녀의 어깨를 살살 잡자 품에 파고들며 금방 잠에 빠지는 그녀였다. 체력이 워낙에 약한 탓임을 알고 있어서 조용히 품에서 자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며 속삭이는 스가와라였다.

 

 

리아야. 우리 다음에도 데이트 하자. 이렇게 우리 둘이서, 손잡고 어디든 가자. 너랑 하고 싶은 일이 많아. 욕심내고 싶은 일도 많아. 너로 인해서 내 과거는 이미 다 사라진 기분이야. 오로지 나한테 있는 건 너랑 함께 하고 싶은 미래야. 그래서, 네 미래에 내가 있었으면 좋겠어.”

 

 

욕심이 났다. 스가와라 코우시가 유일하게 욕심을 내는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아직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커플이었고,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는 그녀라는 것도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고, 욕심이 생겼다. 그녀의 미래를 같이 걷고 싶었다. 아직 오지 않은 가을과, 겨울도 그녀와 함께,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봄을 맞이하고 싶었다. 사계절이 그녀이기를 바랐다. 항상 그와 함께 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욕심은 생각하는 만큼 커지고, 커져서 그가 감당하기 힘든 정도까지 커져버렸다.

 

품에 안겨 잠을 자는 리아의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금에서 뽑아 만든 것 같은 속눈썹 아래, 숨어있는 녹안(綠眼)을 그는 좋아했다. 그녀의 몸을 흘러내리는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도 그는 좋아했다. 그녀의 밝은 성격도, 그녀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도, 모두 다.

 

시선이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다 보이는 건, 그녀의 붉은 입술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아무도 없는 버스 안,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는 건 버스의 엔진이 광광 울고 있는 소리 뿐. 동화속의 한 장면처럼, 공주님에게 도둑 키스하는 왕자님처럼, 그렇게 스가와라 코우시는 제 작은 연인에게 몰래, 도둑키스를 했다.

 

 

그래 가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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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가랠 

 * 말할 수 없는 비밀 AU

 * 공포 6,713자 공미포 4,700자



https://youtu.be/9aEWRCKXjUw




 

그래, 넌 내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w. liell








 화란 예술고교(花蘭 芸術高校). 일본 내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예술 고등학교이며 유명한 예술가들을 잔뜩 배출해 낸 가장 오래 된 학교의 이름이다매년 더도덜도 말고 딱 50명만의 입학생을 받고 있으며 전교생은 150명뿐인 매우 작은 학교이기도 했다. 25명의 미술과 학생, 25명의 음악과 학생그리고 그 학교에 스가와라 코우시(官原 孝支)는 특별 전학생의 신분으로 학교의 교문을 밟았다.

 

 올해의 입학생은 50명으로 동일했지만 안타깝게도 3학년 중 한 학생이 학교를 자퇴했고마침 해외에서 국내로 들어온 그를 학교에서 스카웃 한 케이스였다스가와라 코우시섬세한 터치부드러운 색채독특한 묘사국내외 모든 화가들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그는 학교에 다니고 싶다며 학교의 스카웃 제의를 받아들였다.

 

 

*

 

 

 길이 어지럽고 넓기로 악명 높은 화란 고교에 온 첫날이었기 때문일까모두들 한 번은 길을 잃는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스가와라 코우시그 역시 길을 잃어버렸던 찰나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저절로 발이 소리를 따라 옮겨져 정신을 차려보니 오래된 피아노 한 대와건반 위에서 손을 내리는 작은 소녀와 눈이 마주친 상태였다.

 

 “누구세요?”

 “전학 왔는데요...길을 잃어서요...”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는 작은 소녀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머리를 긁적이면서 길을 잃었다말하자 작은 소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금발의 머리카락심연 그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깊은 녹색의 눈동자()같은 차고 흰 피부까지 일본인이라고 하기에는 조금은 이국적인 외모의 소녀에게 눈을 뗄 수 없었던 그 순간,

 

 “미술과 학생이신가 봐요길 알려 드릴게요 따라오세요.”

 

 상냥한 목소리작게 웃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어색하게 웃으며 그녀를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구두 굽이 복도에 부딛혀 내는 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에 울려 퍼질 때어색함을 떨치고자 먼저 입을 연 쪽은 스가와라의 쪽이었다.

 

 “저기이름이 뭐에요?”

 “리아 스텔리어라고 해요. 1학년 음악반이에요.”

 

 그래여기서 스가와라 코우시가 무언가를 알아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하지만스가와라 코우시는 오늘 전학을 온 전학생이었을 뿐이었고음악반에 대해선 특히 더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음악반과 미술반은 원래 건물이 분리 되어 있었고따라서 딱히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각자의 음악반과 미술반 학생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스가와라 코우시에요말했던 것처럼 미술반이고요오늘 전학 왔어요.”

  “....”

 그녀그러니까 리아의 담백한 반응에 놀란 쪽은 확실히 스가였다그도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의 이름을 들을 때 마다 사람들은 언제나 놀라며 그에게 사인을 해 달라고 하던가악수를 하게 해 달라거나 등등의 요구를 해왔으니까.

 

 “미술과 건물은 여기에요목란(木蘭).”

 “고마워아니 고마워요.”

 “편하게 말 하셔도 괜찮아요명찰색, 3학년 맞으시죠?”

 “으응.”

 “저는 2학년이에요그러면 미술과 건물까지 데려다 드렸으니까 저는 가 볼게요.”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몸을 돌려 가는 그녀의 뒷 모습을 가볍게 바라보다가 순간 무언가 생각이 나 뒤돌아 가는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스가와라였다.

 

 “리아양!”

 “?”

 “아까 친 노래혹시 제목이 뭔지 알 수 있을까?”

 

 낯선 곡을 듣고 그녀를 만났다그래서 그 노래를 찾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그였다그래서 그녀에게 물어봤건만,

 

 “비밀이에요.”

 

 돌아오는 대답은 그것이었다생긋 웃어 보이며 가볍게 몸을 숙이고선 다시 뒤를 돌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

 

 

 수업을 들으면서 그녀를 보는 일은 없었다미술반과 음악반은 수업 자체가 완전히 달랐고건물조차 달랐기 때문에 지나치면서 보는 일도 거의 없었다관심을 끊으면 되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그 날 이후로 그는 계속 그녀를 생각하고는 했다그래서 결국 그는 그녀를 처음 만난 곳으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어느 정도 지리에 적응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그녀와 처음 만난 곳은 과거 음악과와 미술과가 같이 있었던화란 예술고교가 처음 시작 되었던 구 건물이었다.

 

 미술과 건물인 목란(木蘭)관에서는 꽤 거리가 있는 건물이라 미술과 학생들은 그 곳에 자주 가지 않고오히려 피아노가 있어서 음악과 학생들이 더 많이 가는 건물이라며 그 곳은 어떻게 알게 된 거냐 물어오는 쿠로오의 물음에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길을 잃었다가라는 말로 둘러대는 스가와라였다.

 

 “음악관인 매화(梅花)관 근처니까음악과 학생들이 많을거고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저번에 길 잃었을 때 알려준 여자애가 음악과라고 했거든.”

 “예쁘냐?”

 

 시덥지 않은 농을 던지다가 수업 종이 치는 소리에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 가는 쿠로오의 모습에 헛헛하게 웃으며 작게 속삭이는 스가와라였다.

 

 “예쁘더라.”

 

 

*

 

 

 어느 정도 지리에 익숙해진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구 건물에 도착한 스가와라였다그리고 들려오는 익숙한 노래 소리에 발걸음을 빨리해 처음 만났던 그 방 앞에 서자보이는 건 이미 피아노를 다 치고 손을 건반 아래로 내린 리아의 모습이었다.

 

 “오랜만이에요스가와라상.”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자 수줍게 웃으며 그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자 그제야 조금 몸이 풀어져 장난스럽게 웃으며 농을 던지는 스가와라였다.

 

 “그래서 오늘도 그 노래의 제목은 비밀로 남겨두는 거야?”

 “그러게요대신 오늘은 다른 노래를 쳐 드릴까요익숙한 노래일지도 모르지만요.”

 

 두 번째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몇 차례 만난 친한 사이처럼 가볍게 웃으며 그에게 손짓하는 그녀를 보고 웃으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는 스가와라였다피아노 의자에 가볍게 걸터앉는 그를 보고 움찔 하는 것도 잠깐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손가락을 건반 위로 올리며 천천히 한 음한 음을 누르기 시작하는 그녀였다.

 

 야상곡(夜想曲)이라는 이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쇼팽의 녹턴가볍지만 깊고정확한 음을 가지고 있지만몽환적인 그 노래를 그녀는 사뿐히그에게 들려주고 있었다감정의 변화는 없지만 점점 커져가면서도 또 다시 사그라드는 음을 눈을 감고 음미하는 그의 모습에 피아노를 치던 그녀가 웃으며 피아노의 터치를 계속했다물이 흐르는 것만 같은 음색이 한참을 흐르다 멈췄을 때스가와라가 눈을 뜨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쇼팽은 운명 같은 사랑을 한 음악가에요나도그런 사랑을 하고 싶어요.”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는 것 같아 보이는 그녀의 모습이 그의 눈동자 안에 가득 찼지만 그녀의 눈동자는 그를 담지 않고 저 멀리 어딘가에 놓인 무언가를 담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

 

 

 두 사람의 그 비밀스러운 구 건물에서의 만남은 점점 범위가 넓어져 갔다구 건물이 아닌매화관 근처목란관 근처그리고 그녀의 집 앞학교에서 조금 가면 있는 강가까지한 학기에 단 한 번음악과와 미술과의 공통 수업이 있는 그 날에는 옆 자리에 앉아 수업을 듣기까지 했었다리아는 생각보다 수업을 잘 듣는 학생은 아니었고스가와라는 그런 그녀를 보고 웃다가 선생님에게 혼날 번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그들이 그들의 감정을 알아채는 건그리 늦지 않은 시점이었다서로 말하지는 않아도서로의 감정이 같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손을 잡고작은 그녀를 그의 품에 안고그래그렇게 행복하기만 할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사실은,

 

 그래그들은 그들의 감정을 입 밖으로서로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

 

 

 “여기 없어질 거라더라.”

 

 가볍게 던진 스가와라의 말에 순간적으로 얼굴이 확 굳는 리아의 모습에 놀라 그녀에게 왜냐고 묻자 고개만 가로저으며 애써 웃어 보이는 리아였다.

 

 “근데리아야 나 물어볼 거 있어.”

 “뭔데요?”

 “매화관에 더 좋은 피아노가 있는 거 아니었어?”

 “아마도요?”

 “근데 구 건물에 있는 피아노실만 가는 이유가 따로 있어?”

 

 그저 궁금하다는 듯물어오는 스가와라의 물음에 리아는 고개만 돌리며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

 

 “그냥거기가 편해서요오빠 혹시 피아노 칠 줄 알아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서 대화의 주제를 바꾸는 리아의 물음에 한 치의 의심조차 하지 않고선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옛날에 한 번 배웠었는데음악과 학생 앞에서 칠 정도는 아니지.”

 “그러면 알려줄까요오빠가 궁금해 했던 노래.”

 “진짜?”

 

 물어볼 때 마다 비밀’ 이라고 말했던 노래를 알려준다는 리아의 말에 미술과 학생치고는 격한 반응을 보이는 스가와라였다정말로 궁금했었던 것인지 그렇게 나오는 반응에 리아의 입가에는 옅게 미소가 걸렸다.

 

 “알려줄게요.”

 “지금?”

 피아노를 열고 천천히 한 음한 음쳐 내려가는 리아의 길게 뻗은 손가락을 보고 멜로디를 따라가는 스가와라의 눈이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진지해진 것을빠른 템포였음에도 불구하고 음 하나 하나 정확하게 따고 손가락을 가볍게 까닥이는 스가와라를 리아는 그 역시도 모르고 있었다그리고 리아가 몰랐던 것 중에 하나는사실 스가와라가 피아노를 꽤 잘 친다는 것이었고미술 적인 부분에서 유명했었던 것이지 피아노 역시 수준급으로 친다는 것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왜 그렇게 빨리 쳐?”

 “집에 가기 전에는 항상 이렇게 빨리 쳐요.”

 “?”

 “그리고오빠 만약에 이 노래를 칠 일이아주 만약에 있다면절대 우리가 처음 만난 그 방의 피아노로 치면 안 돼요.”

 “?”

 “소리가 안 좋거든요.”


 등을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스가와라 코우시는 알지 못했다리아 스텔리어가 입술을 깨물고눈물을 삼키고 있다는 것을.

 

 

*

 

 

 “좋아합니다사귀어 주세요.”

 

 여느 때와 같이 리아를 만나러 구관을 가고 있던 스가와라를 막은 건 한 소녀였다교복 위에 있는 명찰은 음악과라는 표식을 보여주고 있었고가끔 리아를 만나러 갈 때 스쳐 지나갔던 학생이라는 걸 깊은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미안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

 “그럼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포옹정도야무리는 아니지라는 생각이 순간 들었고 스가와라는 눈물이 글썽이는 그 소녀를 안아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스가와라 코우시는 알지 못했다그의 그 행동을 후회할 것이라는 걸.

 

 

*

 

 

 그 날 이후스가와라는 리아를 보지 못 했다아니 정확히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존재 자체가 원래 없었다는 것처럼그녀를 아는 사람도 없었고본 사람도 없었다정말 말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미술과 학생들에게도안면조차 없는 음악과 학생들에게도 수차례 물어보고 다녔지만그들 모두 그녀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

 

 분명히 그는 그녀를 봐왔는데그녀와 손을 잡았고그녀를 품에 안았고그리고 그녀가 자는 사이에 몰래도둑 키스까지 했는데아무도 그녀가 누군지 모른다고 했다리아 스텔리어라는 사람이 누군지.

 

 “너 그 수업 혼자서 들었잖아미친 사람처럼 혼자 웃길래 뭔가 했는데?”

 “스가쨩 그 수업 혼자 들었잖아오이카와상이랑 쿠로쨩이 같이 듣자고 했었는데.”

 

 음악과와 미술과한 학기에 한 번 듣는 수업 때 스가와라의 옆자리에 앉은 사람그렇게 소개했지만 동급생인 쿠로오 테츠로나오이카와 토오루는 그렇게 말했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때부터였다.

 

 한 학년에 25명밖에 안 되는 음악과 학생들이었다근데그가 만나서 리아를 물은 건 25명의 2학년 학생들이었다머리가 차게 식었다그녀는누구였던 거지혼란이그의 머리 속을 가득 채웠다.

 

 스가와라 코우시는 하루하루를 힘들어 했다. 3학년 졸업 작품 준비도 하나도 할 수 없었다졸업을 위해 그려야 하는 주제는 매 년 달랐지만올 해의 주제는 자유 주제였다주제에 한정되어 학생들의 작품을 가두지 않겠다는 이사장의 지침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스가와라는 붓을 들었다그가 가장 먼저 붓을 들고 한 행동은 초록색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그은 것이었다그가 작업하는 공간은 학교의 구 건물이었다그녀와 처음 만난 그 피아노 앞에서그는 그 피아노를 치고 있는 작은 소녀를 그려갔다갈색고풍스러운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피아노를 치고웃던 작은 소녀를.

 

 생각보다 작업은 빠르게 진행 되었다금에서 뽑아낸 실처럼 영롱한 금빛 머리카락을 흩날리는깊은 심연의 초록을 담은 눈동자를모두가 입는 교복을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만들어냈던 모습을 스가와라의 붓이 캔버스를 스칠 때 마다마법처럼 그가 사랑하는 소녀의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그는 졸업 작품을 냈다그의 작품명은 단 한 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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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에게 그녀는 그 단 한 글자로도 충분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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